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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인재경영 8월호 특집 「2026 HR, 상반기 결산 & 하반기 전략」 기고
2026년의 반환점에 서서 상반기를 돌아보면, 올해 HR 컨설팅 시장을 관통한 단어는 단연 '전환(Transformation)'이었다. 경기 불확실성 속에서 기업들의 컨설팅 예산 집행은 전반적으로 보수적이었지만, AI와 관련된 수요만큼은 예외적으로 뚜렷한 성장세를 보였다. 그리고 그 수요의 성격은 과거의 그것과 확연히 달랐다. 몇 해 전까지 고객들의 질문이 "어떤 제도를 도입해야 하는가", "시스템을 어떻게 구축해야 하는가"였다면, 올 상반기 기업들이 컨설팅 테이블에 올려놓은 질문은 이것이었다. "AI가 우리 회사의 HR과 일하는 방식을 실제로 어떻게 바꿀 수 있는가, 그리고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는가."
질문이 바뀌면 컨설팅의 문법도 바뀐다. 상반기 HR 컨설팅 시장에서 관찰된 변화를 세 가지 장면으로 돌아보고, 하반기의 흐름과 기업들이 주목해야 할 과제를 정리해 본다.
지난 10여 년간 HR 영역의 디지털 전환(DX)은 시스템 구축과 데이터 정비를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다. 그러나 그간의 DX에는 구조적인 한계가 있었다. 구성원과 관리자의 수동적인 데이터 입력에 의존하는, 말하자면 '깨지기 쉬운' 전환이었다는 점이다. 입력이 형식적이면 데이터가 오염되고, 오염된 데이터는 다시 시스템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많은 기업이 경험했다.
AI 전환(AX)은 이 지점에서 DX와 갈라진다. AX는 단순한 자동화나 신기술의 적용이 아니라, 그간 DX가 접근하지 못했던 간극을 메워 HR 활동 자체의 가치를 높이는 전환이다. 그리고 AX는 제도 문서나 정형 데이터가 아니라 훨씬 비정형적이고 개념적이며 민감한 '맥락(Context)'과 연결되어 있다. 어떤 목표가 좋은 목표인지, 이 조직에서 성과란 무엇을 의미하는지, 직무와 스킬은 어떻게 정의되는지. 이런 맥락을 다룰 수 있어야 AI가 비로소 HR에서 작동한다. 상반기 내내 확인한 것은, 이 맥락에 대한 이해(Domain Expertise)가 AX 성공의 필수 조건이라는 사실이었다.
이 맥락의 문제는 사실 새로운 것이 아니다. 지난 DX의 시대에도 글로벌 표준 패키지를 도입했던 적지 않은 국내 대기업들이 국내 인사 운영의 현실, 그룹사 특유의 제도와 문화라는 맥락과의 간극을 좁히지 못해 수년간의 여정을 되돌린 사례들이 있었다. DX 1.0 시절 커스터마이징의 허들이 제도와 문화의 차이였다면, AI가 결합되는 DX 2.0 시대에는 각 기업의 인사 철학과 운영 맥락에서 우러난 도메인 전문성이 맞춤화의 핵심 변수가 된다. 표준 기술은 어디서나 살 수 있지만, 우리 조직의 맥락을 이해하는 AI는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상반기 AX 컨설팅 수요가 만들어지는 메커니즘이었다. 많은 기업에서 경영진은 "AI를 활용하면 인력 운영을 더 슬림하게 가져갈 수 있다"는 기대에 강하게 이끌려 있는 반면, 실무진은 "AI를 도입한다고 해서 업무를 통째로 대체하긴 어렵다"는 현실 인식을 갖고 있다. 이 인식의 간극 자체가 컨설팅 수요를 만들었다. AI 도입의 파일럿과 검증, 조직구조와 직무 변화에 따른 R&R 재조정, 인력 구조에 대한 임팩트 분석 같은 프로젝트가 늘어난 배경이다. 무엇을 어디에 어떻게 적용해 무엇을 만들 것인가에 대한 방향성 자체가 아직 모호한 과도기이기에, 그 방향을 함께 정의하는 일이 컨설팅의 새로운 역할이 된 것이다.
상반기에 확인된 두 번째 흐름은, 1세대 AI 기능에 대한 기업들의 냉정한 재평가다. 지난 1~2년 사이 많은 HR 솔루션에 AI 기능이 앞다투어 탑재되었다. 목표 초안을 추천해 주는 버튼, 평가 코멘트를 요약해 주는 기능, 단답형 챗봇 같은 것들이다. 그러나 현장의 평가는 박했다. 비유하자면 "1년 내내 잠들어 있다가 연초에 목표 몇 개를 추천하고, 연말에 리뷰를 한 번 요약해 주는 AI"에 대해 기업들은 더 이상 감탄하지 않는다.
문제의 본질은 기술이 아니라 설계의 전제에 있다. 기존의 AI 기능들은 '사람이 운영하는 프로세스'를 그대로 둔 채 단계 단계에 AI를 부착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다 보니 기능이 분절되고, 맥락 없이 개별적으로 작동하며, 특정 시즌에만 쓰이는 단발성 도구에 머물렀다. 상반기 시장이 요구하기 시작한 것은 다른 차원의 접근, 즉 '에이전트(Agent)' 관점이다. 목표 수립, 실행 점검, 피드백과 1on1, 평가와 리뷰에 이르는 성과관리의 전체 사이클이 AI가 참조하는 맥락, 즉 에이전트의 재료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AI가 캘리브레이션 세션에서 활동 이력 대비 평가 결과의 정합성을 짚어 주고, 최신 효과나 관대화 같은 편향 신호를 감지해 알려 주는 수준의 개입이 가능해진다.
이는 오랜 화두였던 '상시 성과관리'와도 연결된다. 기업의 회계에 비유하면 이해가 쉽다. 결산은 연말에 하지만 회계 관리는 연중 계속된다. 성과관리도 마찬가지로 평가라는 주기적(seasonal) 이벤트와 실행 점검이라는 상시적(continuous) 흐름이 공존해야 하는데, 사람의 힘만으로 상시 관리를 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했기에 지금까지의 성과관리는 시즌 중심의 형식적 절차로 수렴해 왔다. AI 에이전트가 의미 있는 이유는 바로 이 이상(理想)을 처음으로 실현 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급변하는 환경에서 연초의 목표가 연말까지 유효하기 어려운 시대에, 데이터를 상시 관찰하며 목표의 수정을 제안하고 면담을 권유하는, 한 발짝 앞선(proactive) 개입이 가능해진 것이다.
에이전트로의 전환은 사용자 경험(UX)의 문법도 함께 바꾸고 있다. 글로벌 HR 솔루션들의 AI가 대부분 특정 화면에 부착된 어시스턴트나 코파일럿 수준에 머물러 있는 가운데, 시장의 상상력은 이미 대화창 너머로 확장되는 중이다. 출근길 대시보드에서 '오늘 주목해야 할 팀원'을 브리핑해 주는 카드, 피드백 문장을 쓰는 순간 문장 안에서 제안이 이루어지는 인라인 방식, 그리고 평소에는 보이지 않다가 필요한 순간에만 알림으로 개입하는 이른바 '제로 UI'까지, 역할과 상황에 따라 AI가 나타나는 방식 자체가 설계의 대상이 되었다. 단순한 챗봇처럼 보이는 AI로는 더 이상 구성원의 신뢰도, 경영진의 투자도 얻기 어렵다.
동시에 상반기의 논의는 중요한 균형감각도 남겼다. 하나는 '과도한 개인화'에 대한 경계다. 목표와 평가는 본질적으로 상위 목표와의 정렬, 동료와의 형평 같은 조직적 맥락 속에 있는 활동이므로, 개인 어시스턴트 차원에 머무는 AI는 반쪽짜리일 수밖에 없다. 다른 하나는 데이터의 문제다. 일의 흔적 대부분은 HR 시스템 바깥, 즉 협업 툴과 이메일, 프로젝트 관리 도구에 쌓인다. HR 시스템 내부 데이터만으로 만든 AI는 오히려 범용 AI보다 빈약한 답을 내놓을 수 있다. 결국 AI 시대의 HR은 시스템 간 데이터 연결과 그 거버넌스를 정면으로 다뤄야 한다는 것이 상반기의 결론 중 하나였다.
AI는 컨설팅의 주제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컨설팅 산업 자체를 재편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그 조짐이 이미 구조적이다. 주니어 컨설턴트가 담당하던 리서치와 자료 작성의 상당 부분이 AI로 대체되면서 전통적인 피라미드형 인력 구조가 흔들리고 있고, 일부 대형 펌은 투입 시간 기반 과금에서 성과 연동형 과금으로의 전환을 공식화했으며 (실제로 글로벌 최대 전략펌 중 한 곳은 전체 수임료의 약 4분의 1을 성과 연동형으로 받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 AI 벤더와의 동맹을 통해 엔지니어가 고객 현장에 상주하며 구현까지 책임지는 딜리버리 방식이 확산되고 있다. 전통적인 제도 자문 시장이 정체된 것과 대조적으로, AI · AX 관련 컨설팅은 절대 규모는 아직 작지만 가장 높은 성장률을 보이는 영역이 되었다. 국내에서도 리서치 어시스턴트 수요의 감소 등 유사한 변화가 감지된다.
필자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딜리버러블(deliverable)의 변화다. 컨설팅의 결과물이 보고서로 끝나는 시대가 저물고 있다. '좋은 목표의 조건', 직무별 요구 역량의 표준, 평가와 피드백의 기준 같은 컨설팅의 오랜 지적 자산이, 이제는 문서가 아니라 AI가 상시 참조하는 지식 레이어와 프롬프트의 형태로 시스템에 탑재되어 '작동'하기 시작했다. 회사 공통의 표준 지식 위에 고객사별 맥락을 주입하는 구조, 말하자면 도메인 지식의 제품화다. 진단에서 설계, 구현과 정착까지를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하는 End-to-End 방식이 컨설팅의 새로운 표준이 되어 가고 있으며, 이는 역설적으로 몸집이 큰 대형 펌보다 도메인 전문성과 실행 수단을 함께 갖춘 특화 펌에 기회의 문을 열어 주고 있다.
하반기 HR 컨설팅 시장에서는 세 가지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한다.
첫째, PoC에서 실전 배치로의 이동이다. 상반기가 가능성을 검증하는 시기였다면, 하반기에는 성과관리 · 급여 · 인재 검색처럼 도메인이 분명한 영역부터 AI 에이전트의 실전 배치가 본격화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특정 솔루션에 종속되지 않는 에이전트 아키텍처, 여러 전문 에이전트를 조율하는 오케스트레이션 설계가 새로운 자문 영역으로 떠오를 것이다. 시스템 내부에 심어져 데이터 전체를 다루는 에이전트와, 시스템 바깥에서 자연어로 질의응답하는 외부 에이전트가 공존하고, 나아가 범용 AI가 기업의 HR 시스템에 접속해 "이 목표가 우리 조직의 방향과 정렬되어 있는가"를 묻는 양방향 흐름까지, HR 테크의 구조 자체가 에이전트 친화적으로 재편될 것이다.
둘째, 컨텍스트 거버넌스가 어젠다의 중심에 설 것이다. AI 성능의 격차는 이제 모델이 아니라 조직이 가진 맥락 데이터의 품질에서 발생한다. 직무와 스킬 체계, 목표와 평가 기준, 조직의 운영 원칙 같은 '조직의 암묵지'를 AI가 읽을 수 있는 형태로 정비하는 작업(말하자면 HR 온톨로지 구축)이 하반기 프로젝트의 단골 주제가 될 것이다.
셋째, 컨설팅의 서비스화다. 본격적인 프로젝트형 컨설팅과 셀프 서비스 사이에, AI를 매개로 한 '미니 컨설팅'이라는 새로운 층이 생겨나고 있다. 제도가 미비한 중견 · 중소기업이 AI 기반의 가이드를 받아 제도의 골격을 세우고, 필요한 지점에서만 전문가가 개입하는 형태다. 컨설팅 접근성의 관점에서 의미 있는 변화가 될 것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기업 HR에게는 세 가지 과제를 제안하고 싶다.
첫째, 맥락의 자산화다. AI 도입의 성패는 도구 선택이 아니라 우리 조직의 일과 성과에 대한 정의가 얼마나 정리되어 있는가에서 갈린다. 직무, 스킬, 목표 체계, 평가 기준처럼 조직 고유의 맥락을 데이터화하는 작업이 모든 AX의 출발점이다.
둘째, 부착이 아닌 재설계다. 기존 프로세스에 AI 기능을 덧붙이는 방식은 이미 한계가 확인되었다. 'AI 에이전트가 항상 조직 안에 있다'는 전제로 프로세스 자체를 다시 설계하되, 평가 · 승진 · 배치라는 캘린더 위에서 움직이는 조직의 현실을 무시한 이상론은 경계해야 한다. 비즈니스 임팩트가 분명한 지점부터 단계적으로 확장하는 접근이 유효하다.
셋째, 사람과 AI의 조화다. AX의 목적은 사람의 대체가 아니라, 복잡하고 비생산적이며 데이터를 오염시키던 업무 부담을 덜어내 사람이 판단과 대화라는 본연의 역할에 집중하게 하는 것이다. 인간 직원(Human Employee)과 디지털 직원(Digital Employee)의 협업 구조를 설계하고, 그에 맞는 변화관리와 AI 리터러시에 투자하는 조직만이 기술을 성과로 연결할 수 있다.
상반기가 'AI가 HR을 바꿀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시장이 답의 방향을 확인한 시기였다면, 하반기는 그 방향을 실행으로 증명해야 하는 시기다. 기술은 이미 충분히 빠르게 도착해 있다. 남은 것은 각 조직이 자신의 맥락을 정비하고, 프로세스를 다시 설계하며, 사람과 AI가 함께 일하는 방식을 만들어 가는 일이다. 2026년 하반기, HR과 HR 컨설팅이 그 증명의 최전선에 서게 될 것이다.